[ 소 감 ]
카밧진의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41p ‘마음챙김은 보편적이다’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불교라는 무거운 단어가 나와서 좀 쉽게 적어놓으려고 합니다. 주관적 경험으로 적어놓는 점 참고 바랍니다.
명상을 불교의 수행법이라거나, 특별한 수행적 행위로 여기며 배척하기도 하지만, 불교 이전에 힌두교와 그 이전에 요가에서도 명상을 했고, 고타마 싯타르타라는 샤카족의 왕자도 이런 명상을 배우고 수련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자각(사띠,알아차림)이라는 요소를 추가해서 강조했을 뿐이다. 요가원에가서 하는 명상은 보편적이지만, 불교 명상은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명상을 하면서도 관념에 따라 다양한 느낌과 태도를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다.
명상에는 종교가 끼어들 틈이 없다. 개인의 모든 관념과 틀에서 벗어나 색안경을 벗고, 또렷한 의식으로 스스로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이 과정에 종교적 관념이 끼어드는 것은 방해만 될 뿐이다. 불교적 관점도 끼어들 필요가 없다. 끼어드는 순간 명상은 흐트러 질 것이다.
불교는 고타마싯타르타의 논리와 견해이고, 명상은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선명한 나의 의식이다. 이 선명한 의식 앞에서 고타마싯타르타의 견해는 백사장의 모래알갱이처럼 초라한 대상이며, 생겼다 사라지는 실체없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열심히 명상을 했던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관념과 틀(한계지어진 생각)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며 그것에서 벗어난(색안경을벗고) 의식으로 사람을 마주하고 생각을 마주하고 감정을 마주하면서 일상을 지속해보라는 것이 명상에서 지향하는 것이고, 알아차림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작용과 현상, 결과를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 이해와 통찰, 지혜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 명상의 핵심 원리이다. 지혜를 갈구하면 지혜를 경험하기 어렵지만, 알아차림하면 지혜는 따라온다는 것이 명상의 논리입니다.
25p ‘초심’
"샌프란시스코에 선원을 설립한 일본의 스즈키선사는 “초심자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전문가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초심자들은 무엇이든 잘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이러한 개방성은 매우 창조적이다. 이것은 마음의 내재적인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언제나 신선한고 끊이없이 지속되는 현재 이 순간의 신비로움 속에 머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매 순간이 신선하고 새롭다는 것을 때로 기억할 수 있다면,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당신이 모르는 것(언제나 그보다 큰 세계이다)에 마음을 여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초심이란 ‘알지못함’에 열려있는 바로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오신 분 중에도 명상이 “처음에는 좋았는데 가끔씩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위 내용은 이 의문에 부합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한 20년전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을 재밌게 봤었는데 인상적인 내용이 기억납니다. 생쥐로 실험을 했는데 행동이 지속되고, 소멸되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쥐가 발로 버튼을 같은 횟수를 누르면 밥을 주는 일정한 패턴을 가진 1,그룹과,
같은 횟수로 눌러도 밥을 주지 않고, 간헐적으로 밥을 주는 2.그룹으로 나누었는데,
발로 버튼을 누르는 행동의 소멸은 1그룹에서 나타났고, 간헐적으로 보상을 주는 2그룹은 계속 발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은 뻔한 것, 내가 아는 것에는 몰입이 어렵다는 내용이 것 같습니다.
카지노에 앉아 밥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도박에 빠져 있는 사람들, 매일 돈을 따거나 매일 돈을 잃거나 패턴이 명확하다면 이 사람들은 카지노를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간헐적이어야만 자극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나쁜남자 나쁜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 같습니다. 착한 남자, 착한 여자는 미래가 뻔히 예측되어 자극이 덜 하고, 주의력을 몰입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전과 같은 감동이 느껴지지 않으니 싫증이 나고 지루하고, 그래서 ‘사랑이 식었니, 나와 맞지 않다느니’ 하며 헤어지기도 합니다.
명상이 지루해지는 원리도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이건
'내가 안다, 아는 것이다. 뻔하다”라는 경솔한 판단과 추측, 자동적 사고와 핵심감정 등을 알아차림하며,
몰입이 어렵고 지루한 순간, 다시 몰입해본다면 아는 것을 넘어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전에 느꼈던 감동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주의를 두기 어려운 곳에 주의를 계속 기울이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며 힘든 과정이지만 “안다는 생각과, 뻔하다는 생각”을 알아차리며 다시 몰입을 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예측(한계)을 벗어난 창조적인 경험을 자유롭게 하라는 말로 생각됩니다.
집 앞에 꽃을 보며 느꼈던, 오늘의 감동이 내일도, 모레도, 다음달도, 내년도 매일같이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결핍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충만함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 하겠습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속에서 마주하고 느낄 때 가능한 내용라는 메시지를 카밧진 박사는 반복적으로 하면서 알아차림을 강조하고 마음챙김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알차림을 해 보면 몸,느낌,감정,생각 이라는 네가지를 알아차릴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몸의 작용, 핵심신념, 핵심감정, 왜곡된 신념 등 이로 인한 의도, 행동패턴들을 발견할 수 있고,
일상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쫒는과정, 싫어하는 것에 도망다니는 과정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욕망과 방어기재 행동 패턴을 발견하며 이해하는 유익한 과정을 경험하는 것을 실전 명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으면 정말 행복한 것인지? 내가 싫어하는 것을 피하면 정말 행복해지는 것이지? 나의 의도와 행동과 결과까지 알아차림 하는과정에서 많은 이해와 통찰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앉아서 하는 명상은 축구하기전 스트레칭 정도로 여기면 되겠습니다. 스트레칭만 하면 지겨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걸 “왜 하나?”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고, 축구하면서 공차는 재미를 느껴봐야 계속 축구를 하는 행동의 지속성이 있겠습니다.
차 막히는 저녁 시간에 식사도 못 하시고 오셔서 함께 해주시는 회원분들에게 감사드리며, 활용하셔서 일상에서 유익함을 빨리, 많이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글이 길어지는 점도 양해를 바랍니다. 이해를 한 만큼 활용이 가능한데 짧은 글은 함축적이고 이해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짧은 글로 쉽게 이해를 촉진할 만한 재주가 없다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모양새가 아니라, 이해하고 활용해서 유익함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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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정모 때 뵙겠습니다.
<동아리 대표 황O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