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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부산 북구 화명동에서 아내와 초등4년의 딸 진영과 5세 된 아들 민재, 4식구가 함께 사는 전형적이고 평범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딸 진영은 그림에 소질이 있어 만화그리기를 좋아하고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며, 아들 민재는 잠시만 눈을 떼면 사고를 치는 굉장한 개구쟁이인데, 이 두 아이의 양육은 주로 아내가 담당하고 있지요. 저는 대한민국 경찰관으로서 이런 아내의 내조가 있기에 마음 놓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복을 입은 경찰을 보면 참으로 남자답고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크면 경찰관이 되어야지’하고 평소 가슴에 품고 오던 중 1991년 7월에 경찰직에 몸을 담고,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라는 표어를 사명감으로 경찰생활 15년, 그 중에서도 13년째 외근수사형사 활동을 하느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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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형사를 하면서 살인, 강·절도 등 많은 사건을 취급하였습니다. 사건을 해결하여 피해자들의 억울한 일을 풀어 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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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강력계형사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관할 내에서 밤11시경 강도 사건이 발생하여 전 형사들이 비상 긴급 출동한 일이 있었습니다. 승용차를 타고 범인을 검거하기위해 순찰을 돌던 중 30미터 쯤 전방에 낯선 남자 1명이 손에 가방을 들고 저희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김해까지 가는데 택시가 잘 잡히는데 까지만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저와 옆에 탄 동료는 좀 전에 발생한 강도사건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함을 한눈에 알아보고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는. “예. 알겠습니다.”하고 일단 범인을 안심시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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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파출소로 데려가서 “강도님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하며 강도용의자를 검거하여 텔레비전에 이슈가 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또한, 당직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잠결에 “도둑놈 잡아라.”하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뛰쳐나가보니 그 도둑이 우리 집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태권도 4단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격투 끝에 범인을 검거한 사건으로서 부산일보의 오뚜기 코너를 장식한 적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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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저는 부산 강서경찰서 수사과 과학수사팀형사로 근무 중입니다. 저희 과학수사팀이 하는 일은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임장하여 범인의 흔적을 채취, 감식 등 증거 수집을 하여 용의자를 특정하고 형사들이 추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 일입니다.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모든 수사기법을 다 동원하여 범인을 밝히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한계로 인해 피해를 당한 국민들의 억울함을 다 풀어주지 못할 때에는 그저 죄송스런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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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범죄 현장은 반드시 범죄인의 흔적이 남는다.”고 믿고 있기에 저와 저희 과학수사팀 형사들은 오늘도 그 흔적을 찾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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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같은 직업을 가지다 보면 세상의 음지에 있는 사람들, 비행 청소년, 노숙자 등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돕는다고 하지만 항상 부족함을 많이 느껴 사회복지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동료의 소개로 부산디지털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가지고 있던 갈증들을 강의를 들으며 해소해 가고 있으며, 앞으로 수사 활동을 계속하면서, 아울러 사회복지 차원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주어진 내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교정, 교화를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는 민중의 지팡이로서, 든든한 이웃으로, 15년의 경찰생활 가운데 언제나 내 삶의 푯대가 되어온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는 표어에 부응하는, 배움을 바탕으로 법과 양심에 따라 국민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권 경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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