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쑥 떠올리듯이 복지사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주위에서 학업 성취 목적으로 복지사에 도전하는 지인들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 양산, 경산, 창원 등 2년제 대학교 안에 개설된 복지학과를 다니며 어린 대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결석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격려하고 동시에 부러움을 내비치었습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저는 남의 얘기인 듯 저가 가진 현실에 만족하며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 가고 있을 시점에 자녀들이 학업에 의한 독립으로 타지로 한 명씩 나가면서 할 일이 일순간 없어진 듯 공허했고 집이 너무 넓게 느껴지면서 무서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직장을 10여 년간 다니고 있어 낮에는 그런 감정을 느낄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밤이 되면 찾아오는 공허함이 동갑내기 남편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직장이 보험회사이다 보니 현실에 대한 많은 이슈를 접할 기회가 넘쳐납니다. 100세 시대, 빈곤 노인, 하우스푸어 등 은퇴 후 일과 복지에 대해 보험과 연관된 교육을 받거나 고객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강의방식이 활성화되면서 쉽게 대학 벽을 뚫거나 그에 못지않은 자격증을 취득할 기회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편입, 전과가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일부 학과가 고시 못지않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지만 편입이 예전처럼 높은 벽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육십이 넘기 전에 도전해 보고 싶었고 저가 꿈꿔 왔던 복지사의 꿈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주위에선 너무 늦은 나이이며 과포화 상태인 사회복지사들의 현황을 예를 들며 선뜻 호응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인터넷에서 부산디지털대학교에 대한 홍보가 자주 눈에 띄어 몇 번을 망설이다 전화해 보았습니다. 상담 교수님의 열의와 장학제도에 마음이 이끌렸지만, 입학날짜 마감으로 인해 3학년 1학기를 놓치고 2학기부터 동료설계사였으며 현 간호사인 지인과 함께 과감히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리엔테이션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지도교수님이 보내오신 카카오톡 내용에 따라 수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시작일인 9월 1일, 늦은 밤이지만 노트북 앞에 앉아 등교를 하려니 하나하나씩 막히기 시작하며 편입의 벽보다 등교의 벽이 저한테 너무 높아 보였습니다. 처음 존재를 알게 된 범용인증서의 가입방법을 열심히 인터넷으로 찾아 우여곡절 속에 이틀 만에 등록하여 무사히 등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교수님의 등교 독려 문자를 몇 차례 받기도 했습니다. 시간에 상관없이 카카오톡에 답변해주시거나 전화를 주시기도 하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단체 톡방에 초대해주셨으나 1학년부터 진학했거나 편입이 빨랐던 학우들이 태반이다 보니 언제 끼어야 할지 타이밍 찾다 보니 낯설거나 소외감에 눈으로 읽기만하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 참 중요한 정보들이 많아 저에겐 눈으로 하는 채팅도 대학생활의 일부였으며 일상생활이기도 했습니다. 강의노트 제본형식 공유(강의노트를 pdf 파일로 보내줘 저의 메일로 보내 다운로드해서 출력하였습니다.), 강의 주차별 알림, 공지사항, 리포트 작성요령 등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3학년 편입 시, 수강신청요령이 적힌 수강계획서를 올려줘 그 토대로 수강신청을 해 사회복지사2급, 건강관리사, 실버코칭상담사, 자원봉사관리사, 노인생애설계사 등 무려 5개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첫 오프라인 수업이 있던 날은 카카오톡 속 학우들과의 매칭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두 번째 오프라인 수업 때는 커피숍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온라인 수업 위주라고만 생각했는데 대면 수업, 동아리 활동, M/T 등으로 인해 어느 일반 대학 못지않은 만남이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친숙한 모습에 활동적이었던 대학시절이 생각나고 그리워 설레었습니다.
편입으로 진학하다 보니 대부분이 전공으로 이루어져 비슷비슷한 과목과 용어 구별이 어려웠으며 퇴근 후, 집안일 마친 후 강의를 듣다 보니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집중을 하기 위해 다양한 색의 형광펜과 볼펜을 활용해 수업내용을 필기했으며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등교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러다 보니 새벽까지 강의를 들은 적도 많았습니다. 자유게시판이나 토론게시판에 늦은 시간에라도 글을 많이 올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토론글 작성 시 요령습득이 미숙하고 독수리 타법인 관계로 고민과 숙고로 시간을 끌다보니 내용이 다 사라지거나 등교를 다시 해야 해 몇 번을 반복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첫 시험 땐 긴 서술형 문제를 적을 때 저장을 하면서 해야 하는 것을 몰라 다시 작성으로 시간에 쫓겨 객관식 문제들을 찍어 마무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가 안타까웠는지 사라진 토론내용을 대학생인 딸이 찾아 복구해주었을 때는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리포트는 학창시절에 수없이 작성해봤지만, 세월이 많이 지났고 재도전이다 보니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고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다 김해도서관도 방문하였지만, 마감 날짜를 일주일 남겨놓을 때까지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제목을 정하는 데에만 하루가 걸렸고, 아직 아날로그적인 세대이다 보니 A4용지에 일일이 적는 게 익숙해 백지에 적고 또 적고 몇 번 읽어보고 이런 과정을 거친 후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쳐 5~6개의 리포트 작성을 끝내고 나니 오른쪽 팔뚝과 손가락이 아파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신우신염과 방광염이 와 한 달을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리포트 작성 후 과목의 이해도가 높아져 다음 수업내용이 쏙쏙 들어와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작성된 리포트를 보니 저 스스로 감탄하며 유용했던 학습활동이었습니다.
시험은 여전히 두렵습니다. 처음 학기는 오프라인임을 인지하며 만만하게 봐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강의노트만 나열한 채 치르다 보니 운전면허시험처럼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 문제에 적지 않게 당황했으며 학창시절 통틀어 최악의 성적을 받은 과목도 있어 충격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학기를 거듭할수록 요령도 습득하고 비슷비슷한 과목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반복 학습도 되었으며 여러 교재 구매 등 과감한 투자로 A+ 학점들이 많아지니 신이 났으며 공부가 재미있어졌습니다.
전공이 복지 관련이다 보니 최대 걱정이 실습입니다. 학기 중 실습을 하려는 저에게 단톡방의 도움이 컸습니다. 4학년 1학기 때 주거지인 김해지역실습기관에서 주말에도 가능한 곳을 찾으려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찾지 못해 마지막인 4학년 2학기에 학교의 도움을 받아 선배님들이 실습했던 몇몇 곳을 전화하고 상담받은 후 선택해 실습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디지털대학은 직장인이 태반이며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스스로 찾고 학습해야 하며 특히 나이든 학생들이 많아서 교수님들도 교직원분들도 학생분들도 참으로 힘들었지만, 어느 학창시절보다 보람차고 습득력도 높았습니다.
특히 본인의 선택에 의한 진학이라 적극적인 학습과 활동으로 만족스러운 대학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슬픈 현실이지만 몇 년 있으면 저도 수혜자의 반열에 듭니다. 이번 편입을 통해 앞으로 저의 노후생활에 대해 깊고 넓게 생각할 수 있게 했으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늦은 나이의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여기에 멈추지 않고 사회복지사 1급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수혜자이든 비수혜자이든 정보를 알아야 스스로나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편입은 참으로 좋은 선택이었고 2년 동안 슬기로운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