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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칼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20221005

  • 2022-10-05 10:58
  • 담당자
  • 119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본문 : 히 11:1~6

찬송 : 50장 이 눈에 아무 증거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다.

2. 신앙의 선조들이 믿음으로 인정받았다.

3. 믿음으로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다.

4.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함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5.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죽지 않고 승천하였다.

6. 하나님과 그의 상을 믿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1.서론

 보험회사에서 조사했는데,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면 남편의 사고율이 감소하고 직장에서도 승진도 빨리하고 집도 빨리 장만하고 수명도 5년 이상 길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환자가 의사를 기쁘게 하면 의사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환자가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환자가 의사를 불신하면 성심껏 진료하는 데 지장을 준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기쁘게 하면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여 가르치고,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하면 그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사람이 사는 이치가 그렇듯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것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복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정하였습니다.

  

2.예배로 믿음을 표현하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첫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믿음의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이지요. 또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즉 보이지 않아도 아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녀가 부모를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학생이 선생님을 믿지 못하고, 국민이 정치가를 믿지 못하고, 직원이 사장님을 믿지 못하면 어떨까요? 믿음이 없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주지 않고 믿으라 하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을 잘 지키고 신실하게 살았는데도,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상심이 클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도 없으시고 필요한 것도 없으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믿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예배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으로 믿음으로 보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약 2:18)

그렇습니다. 믿음에는 믿음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의 행위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이렇게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세상에서 한가롭게 예배할 시간이 없다고...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에게 모든 시간을 달라는 게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내게 시간을 내 줄 수 없느냐? 너를 위하여 내 아들까지 아까워하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 주었는데 넌 날 위해 무얼 주었느냐?”

아벨은 자기가 기르던 양 중에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주셨고, 초장을 주셨기 때문에 받은 것의 일부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내 시간을 드리고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을 예배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감사로 예배드리면 쉼을 얻고, 평안을 얻지만, 억지로 참여하면 피곤하고 괴로울 따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감사의 조건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아벨 다음으로 살펴볼 사람은 에녹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예배의 연속이었습니다. 꼭 단을 쌓고 재물을 태워 드려야만 예배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4)

에녹처럼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예배의 삶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하나님과 같이 대하는 삶이 예배하는 삶입니다.

  

3.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믿는 사람은 예배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의 말씀을 듣고, 소원을 하나님께 아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뭔가를 계속 주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뭔가를 계속 주고 싶어 하지 않나요?

누구나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법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눅 6:32)

그런데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지 참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심지어 아들까지도 주셨는데 말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기도하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그 누가 주는 상보다 큰 상입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부정적 받아들입니다. 아벨은 예배드리고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것이 복인가요? 누구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사업이 망하고, 누구는 병들었는데...

맞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스데반 집사님 같은 경우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치는 세상과 같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마 19:16) 

예수님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1).

이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천국은 가야겠는데, 재산 없이 세상을 어떻게 살지? 천국 가기도 전에 지옥을 체험해야겠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3~24)

제자들이 놀라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 19:25)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

제자 베드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 물질의 복을 받았는데, 베드로는 물질의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얼마든지 그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지만, 자원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마음으로 누리를 진정한 행복입니다. 

김요석 목사는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마치고 전라도 영암 나환자촌 영호교회에서 10여 년간 목회하시다가 현재는 중국 오지에서 나환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김요석 목사님이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는데,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사람들이 비난하더랍니다. 독일에서는 보수적이라고 비난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반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지요.

그에게 교수님이 문둥이 마을에서 목회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아 그곳에서 목회를 시작했는데, 처음 예배를 드리고 악수를 하려는데 잡을 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이 병 때문에 예수 믿게 되었으니 복 받았다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상이 물질의 복일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같은 물질의 복이 될 수 있고, 요셉과 같이 총리가 되는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이 선교사나 순교자의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여러 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습니다. 아무나 재산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고, 명예의 복도 주시고, 형통의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가장 장수하는 직업군이 목회자라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검소하게 살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기독교 정신을 가진 국가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가진 자는 더하여질 것이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일에도 충성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구하여 풍성하고 아름다운 복을 받아 누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